구조적 달러 수요 폭증과 대외 환경 불확실성 증대
유통업계 원가 상승 압박 심화, 소비자 물가 전이 우려
외환당국, '비상 조치' 돌입...환율안정 '4자 협의체' 가동
[포인트경제]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500원 선에 근접하면서 국내 외환시장에 비상등이 켜졌다. 환율 급증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유통 및 소비재 업계에 즉각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외환 당국은 총력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지난 24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76.50원으로 25일은 1480원대에 가까운 수준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환율 급등세는 구조적 달러 수요 폭증과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등 복합적인 결과로 분석된다.
원화 약세 심화...환율 급등의 축은?
외환 당국은 가장 큰 구조적 원인으로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매수(서학개미)와 기관투자자들의 대규모 해외 투자를 지목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가 유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달러가 해외 금융시장으로 재유출되면서 국내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개인들의 해외 주식 결제 수요가 장중 특정 시간에 집중되어 환율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게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회되고,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로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일본 엔화 등 주요국 통화가 가파르게 약세를 보이는 것 또한 원화의 상대적 하락 압력으로 가중되고 있다.

유통업계는 원가 상승 압박이 심화되고 소비자 물가로 전이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식용유, 밀가루, 커피 원두 등의 수입 단가가 급등하면서 라면, 빵, 과자 등 가공식품의 도미노 인상 압박이 현실화되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주요 유통 채널에서 판매되는 수입 명품, 식료품, 생필품 등 거의 모든 수입품의 원가가 치솟고 있고, 이는 재고가 소진되는 시점부터 유통 기업의 마진율을 급격히 떨어뜨리며 수익성에 직접적 타격을 주게 된다.
원가 부담은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소비자 물가 상승 압력으로 전이되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약화시키고,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또 환율이 오르면 달러 기준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해외 직접구매(직구)의 매력이 크게 떨어져 일시적으로 국내 유통업체로 소비가 회귀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지만, 결국 전반적인 소비 지출 자체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크다.
환율까지 오르면 물류비용이 이중으로 증가하게 되고, 이 비용은 결국 유통 마진을 깎아내거나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어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국제 유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데 운송 대금 결제는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외환당국, '비상 조치' 돌입...환율안정 '4자 협의체' 가동
외환 등국은 환율 급등을 금융 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로 판단하며 강력한 개입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24일 기획재정부는 "기재부와 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과정에서의 외환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한 4자 협의체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과 긴급 시장점검회의를 갖기도 했다.
4자 협의체에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함께 하는 것은 외환시장 안정에 국민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날 첫 회의에서 국민연급의 대규모 회외 투자가 외환시장 수급에 미치는 변동성을 줄이는 방안이 다뤄졌다고 전해졌다.
기재부는 "시장의 불합리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구두 개입 수위를 높였고, 시장 참가자들은 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활용한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을 통해 환율 상단을 방어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최근 환율 쏠림 현상의 주범으로 꼽히는 해외 주식 거래량이 많은 대형 증권사들을 긴급 소집하고 증권사들의 외화 유동성 확보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또 장 시작 직후(오전 9시) 집중되는 달러 수요를 분산시키는 등 시장 안정화에 협조할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정부는 고환율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이 서민 경제를 위협한다고 보고, 직접적인 시장 개입과 공급 안정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외환 전문가들은 당국의 강력한 대응이 단기적으로 환율 급등세를 진정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미국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등 대외 환경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시장 안정이 가능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포인트경제 김민철 기자
